
툴렛님
한 밤의 꿈
엔터프라이즈 호의 늦은 밤, 레너드 맥코이는 연구실 한 켠에서 의자에 기대 불편하게 졸고 있었다. 자신이 졸고 있던 것도 모르다 고개를 떨군 것에 깜짝 놀라 깬 레너드 맥코이는 경과를 지켜 보던 트리블이 책상 아래로 내려가는 걸 보았다. 트리블을 따라 책상 밑으로 고래를 숙인 그 때, 까만 구멍이 점차 벌어지더니 레너드를 빨아들였다. “우아악!” 멋없는 비명을 지른 레너드가 하염없이 구멍 아래로 추락했다.
“망할! 이게 다 트리블 때문이야!”
야~ 야~ 야~ 레너드가 떨어지고 있는 구멍에는 그의 성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구멍의 깊이가 얼마나 깊던지, 레너드는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동안 그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펜과 체콥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긴다더니 체콥 자신조차 위치를 잃어버려 영영 찾을 수 없어진 술을 보았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자그마한 나사 같은 것으로 저 많은 부품들을 잃어버리고서도 움직이는 함선이 대단하기도, 또 무섭기도 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물건들의 비가 끝나고 나니 우주답게 검고 광활한 공간이 계속되었다. 정말 엔터프라이즈 바깥으로 떨어진 것은 아닌지 숨이 가빠 온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눈 앞에 펼쳐진 새까만 어둠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럴 바에는 잠이라도 자자, 싶어진 레너드가 눈을 감는 순간 영원할 것 같던 추락이 끝났다.
“아이고. 여기가 어디야?”
딱딱한 바닥에 툭 떨어진 레너드가 징 울리는 꼬리뼈를 쓰다듬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떨어지던 깊이에 비해 땅에 닿았을 때의 충격은 적어 다행히 뼈가 부러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제 몸 상태 확인을 끝낸 레너드가 그제야 주위를 살폈다. 브릿지라도 연상시키듯 갖가지 계기판이 보였다. 아무래도 우주선인듯 했으나 전혀 처음 보는 생김새였다. 혹시 적대세력에 납치라도 된 것이 아닐까, 불길한 상상이 스쳤을 때, 아래쪽에서 철판을 텅텅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네. 어디에서 온거지? 이 부숭부숭한 생물은 또 뭐고.”
이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버튼을 멋대로 눌렀어. 바닥에서 트리블을 손에 쥐고 나타난 남자가 아무래도 이 공간의 주인인듯 싶었다. 자신보다는 트리블을 손에 쥐고 요리저리 돌려보는 것이 그도 레너드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여기가 어디지? 그 녀석이 도망치는 걸 잡으려다 갑자기 이곳으로 떨어졌어.”
관찰이 끝났는지 트리블의 털을 고르던 그가 드디어 레너드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떨어졌다고? 혹시 이 녀석이랑 결혼식 중이었던 건 아니지?”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그 솜털이랑 내가?”
“아니라면 다행이고.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하긴 그 옷을 입고 결혼하는 건 쫌...”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그의 손가락이 레너드의 상하의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린 레너드의 시야에 이제는 거의 피부처럼 느껴지는 파란색 유니폼이 보였다. 온갖 말에 딴지를 걸었어도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별로 결혼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또 완전 새로운 경우로군. 우주는 정말 재밌는 곳이라니까.”
“재미?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뚝 떨어지는 게 재밌어?”
“응? 신나지 않아?”
정말로 재밌다는 듯 활짝 웃는 미소와 미간에 잔뜩 잡힌 주름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물론 레너드 쪽이 후자였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게 뭐가 신나. 재미란 건 안전한 집에서 안락한 소파에 누워 맥주에 tv나 보는거야.”
이번에는 상대방 측에서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뭐가 재밌는거지? 물리적 거리에 비해 공감대는 성간 거리만큼이나 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정할 수 없는 문장에서 그나마 인정할만한 단어를 뽑은 그가 레너드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집이라... 집. 좋지! 그래서 그 집은 어디야?”
“아니, 내가 가야하는 곳이 또 집은 아니긴 한데.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면...”
어느 성단이었던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정확한 위치를 외우고 있지는 않았다. 패드라도 들고 있지 않을까 했지만, 소지품이라고는 주머니에 있던 커뮤니케이터가 전부였다. 제임스와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커뮤니케이터에서는 신호연결음조차 가지 않았다.
“젠장. 연결이 안돼.”
“이리 줘봐.”
“이게 뭔지는 알아?”
“전화기 아냐?”
레너드에게서 커뮤니케이터를 건네받은 그가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버튼이 달린 뒷판을 열었다. 그 행동을 보던 레너드의 목에 뭐하는 거냔 비명이 걸렸지만 신호가 가지 않는다면 고장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또 어떠랴 싶었다.
“그나저나 소개가 늦었네. 난 닥터야.”
“닥터 누구?”
“그냥 닥터. 오, 이건 꽤 진보한 기술이네.”
기판을 열어본 닥터가 작게 감탄을 했다. 자신이 본 적 없는 외계생명체의 이름을 알고 있는 점이나 휴대폰의 기술 상태를 보면 맥코이가 먼 미래의 지구인인 건 분명했다.
“이름이 닥터인건가? 아무튼 나는 맥코이야, 레너드 맥코이. 닥터이기도 하고.”
“좋아. 다 됐다. 만나서 반가워. 닥터 맥코이.”
닥터가 드라이버처럼 생긴 것으로 이곳저곳을 쏘더니 다시 레너드에게 커뮤니케이터를 건네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달라진 바가 없는 물건을 맥코이가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 하는 눈빛으로 레너드가 닥터를 쳐다보았다.
“그냥 평소처럼 해. 이제 신호가 갈거야.”
반신반의보다는, 의심이 팔할에 가까운 상태로 다시 한번 제임스와 연락을 시도하자 놀랍게도 신호가 갔다. 혹시라도 폭발할까 귀에서 멀찍이 떨어트려 놓기는 했지만.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스피커 너머로 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 나야.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좌표가 어디지?”
“뜬금없이 무슨... 잠시만.”
이게 정말 되잖아? 제임스가 좌표를 확인하고 있는 동안 레너드가 닥터를 눈짓했다. 이상하게 생긴 계기판을 여기저기 쓸어보던 닥터가 그 시선을 눈치채곤 별 거 아니라며 씨익 웃었다. 원하는 좌표를 들은 레너드는 무슨 일이냐는 커크에게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종료했다.
“2268년. 목적지는 509,816,901!”
닥터의 목소리에 맞춰 전광판에 2268라는 숫자가 떴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기계음이 나더니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레너드는 급하게 눈 앞에 보이는 손잡이를 잡았다.
“원래 이렇게 흔들리는 건가?”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을 때나 느꼈던 진동에 사라진줄 알았던 우주멀미가 도지려고 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닥터가 정신없이 버튼을 조작하는 동안 레너드는 전광판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2268이었던 숫자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닥터! 지금 숫자가 2268년이 아닌데?”
고개를 든 닥터가 화면을 보고는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타디스가 가고 싶은 곳이 있나본데?”
이럴 때는 자기 말도 듣지 않는다며 버튼을 누르던 손을 뗀 닥터는 레너드처럼 손잡이를 쥐었다. 태평한 모습에 기절할 것 같은 건 레너드였다. 우주선에게 이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스콧과 같은 과인가 싶었다.
“고장난 거 아니야?”
“쉿. 그녀가 들으면 화내.”
정정한다. 스콧보다 더했다. 그는 정말 코어처럼 보이는 기둥에 대고 레너드가 한 말은 신경쓰지 말라며 도닥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손길에 맞춰 웅웅거리는 것이 꼭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너드가 자신이 한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극한의 상황에 몰려 미쳤거나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려가던 숫자는 2250년대가 되어서야 멈췄다. 타디스의 진동 역시 동시에 멈췄다. 마침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닥터가 벗어뒀던 외투를 챙겨들고는 문으로 향했다. 놀란 레너드가 그 뒤를 따라가 닥터의 앞을 막아섰다.
“어딘 줄 알고 그냥 내리는 거야? 밖에 뭐가 있을줄 알고!”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지. 불안하면 그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어.”
순식간에 밖으로 나간 닥터가 그가 가리켰던 화면에 잡혔다. 손을 흔드는 닥터 뒤로 보이는 장소가 익숙했다. 레너드는 이 복도를 기억했다. 자신이 스타플릿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마지막으로 근무 했던 병원이었다.
닥터에게 위험하다며 타박했던 것도 잊고 레너드는 허겁지겁 문을 나섰다. 2254년, 제니가 아직 살아있을 시간이었다. “거봐. 역시 밖에 나오는 게 재밌지?” 기뻐하는 닥터를 뒤로한 채 레너드는 한 병실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언제나 책을 읽느라 늦게 잤던 제니는 당직 의사들에게 혼날까 작은 조명 하나만 켜둔채 이불 속에 웅크리고 책을 읽곤 했다.
레너드는 늦게 자는 건 삼일에 한 번씩만 하자고 협상하는 협상가이기도 했고 제니가 들키지 않게 망을 봐주는 공범자이기도 했다. 그의 기억처럼 이불 밑으로 다 숨기지 못한 아이의 손에는 ‘우주함대 대모험’ 이라는 어린이용 소설책이 들려있었다.
“제니!”
“앗! 깜짝이야. 맥코이 선생님...? 또 오셨네요?”
동그래졌던 눈이 곧 자신을 알아보고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신이 우주로 떠났던 이유. 자신보다 우주에 나가고 싶어했던 아이. 십여년만에 본 얼굴에 레너드는 말문이 막혔다. 살아있는 것이 반갑고 기쁜데, 자신은 지금 제니를 치료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단 한가지의 방법이 떠올랐으나, 치료제를 구하자고 깨울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친우를 살렸던 약으로 저 어린 아이는 살릴 수 없다는 죄책감에 차마 다가가지도 못한 채 문 앞에 멈춰있던 그를 움직이게 한 건 흥분한 제니의 목소리였다.
“와, 그 옷! 스타플릿 선원복이죠? 맞죠?”
결혼식에 입고가면 당장 파혼감일 옷을 누구보다 기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레너드는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진짜 잘 어울려요. 맥코이 선생님은 의사선생님이니까, 스타플릿 의료부인 거네요!”
언제나 스타플릿에 입사하길 희망하는 제니는 스타플릿의 체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레너드가 가까이 오자 만져봐도 되냐고 묻는 제니를 향해 기꺼이 그는 소매를 내주었다. 레너드는 정말 진짜같다며 어디서 얻었냐는 제니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스타플릿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잠시 빌려왔다 답했다.
“널 위해서 그 친구한테 항해 이야기를 좀 들어왔는데 말이야. 오늘은 책 말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볼래?”
“좋아요!”
레너드는 제니에게 그가 했던 여행을 들려주었다. 온통 빨간 행성을 뛰어다니고 척박한 행성에서 하마터면 폭발할 뻔 했던 이야기도 있었고, 유리볼처럼 생긴 요크타운에 대한 설명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일을 겪으며 레너드가 했던 모든 욕들은 전부 편집되었다.
“또, 또! 그래서요?”
“제니. 이제 그만 자야지.”
“그치만... 너무 재밌단 말이에요.”
“자고 일어나면 또 이야기해줄게.”
“정말이죠? 약속이에요!”
“그럼 약속하지.”
레너드가 바로 누운 제니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직 신나보이는 눈 주변은 발갛게 물들어 자야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을 알렸다.
”잘자렴. 좋은 꿈 꾸고.”
레너드가 눈을 감은 제니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협탁 옆에 놓인 시계에는 00시를 넘어가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다음날로 넘어간 날짜가 보였다. 제니가 죽었던 그날이었다. 평소처럼 늦게까지 책을 읽던 제니에게 조금만 보다 자라며 문을 나섰던 밤, 제니는 더는 책을 볼 수도 미래를 향한 꿈을 꿀 수도 없었다.
문 앞에 주저앉은 레너드를 향해 닥터가 다가왔다. 닥터는 어째서 타디스가 이곳으로 왔는지 제니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집에 가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소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레너드의 가장 강한 소망은 제니에게 그 아이가 꿈꿨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니가 깨어날까봐 들썩거리는 어깨조차 누르며 눈물을 삼키는 그에게 닥터가 건넬 수 있는 위로는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닥터. 닥터네 행성에는 저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약이 있지 않을까?”
“우리 행성에는 없을거야.”
닥터의 행성은 약도, 존재조차 남지 않아있다. 눈 앞의 괴로움으로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운 남자에게 자신의 괴로움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닥터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만 저었다.
“그럼, 닥터는 시간여행자잖아. 내가 제니 같은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약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모든 역사를 다아는 것은 아니지만, 맥코이 당신이라면 발견할 수 있겠지.”
아무런 확신도 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자신보다 젊은 얼굴에 비치는 세월이 묘한 믿음을 레너드에게 심어주었다. 새벽 3시 40분, 곧 제니의 발작으로 과거의 자신이 올 시간이었다. 이론으로나 접해본 시간여행이지만 레너드도 기본은 알았다. 자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타디스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타디스에 오른 닥터가 다시 시간대를 조정하고 손잡이를 힘껏 내리자 우웅- 하는 기계음이 울렸다. 전처럼 요동은 쳤지만 시간대가 멋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멈춘 타디스 바깥으로 다시 한 발을 내딛자 그곳은 레너드가 졸고 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지. 나도 보러 갈 여자아이가 있거든.”
“태워줘서 고마웠어. 타디스, 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기계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퍽 이상한 일이었지만, 타디스가 아니었다면 제니를 다시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레너드의 말에 닥터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해주도록 할게. 레너드, 당신도. 행운을 빌어. 꼭 발견할 수 있을거야.”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사라진 타디스 뒤로 레너드가 구멍에 떨어지기 전까지 졸던 책상이 보였다. 잠들기 전 보았던 시간과는 10분도 차이나지 않았다. 레너드가 급격히 피로해진 몸을 의자에 몸을 기대는데 연구실 문이 열렸다. 문이 전부 열리는 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온 제임스를 필두로 스팍에 우후라, 채플과 보안 크루까지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크지 않은 연구실이 순식간에 늘어난 사람들로 북적였다.
“본즈!”
“짐? 그리고 다들... 여긴 왜 왔어?”
“아니, 네 전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어디 있는지 찾아봤는데 생체 신호가 안 잡히잖아. 채플에게 물어보니까 연구실에 있다고 해서 널 찾으러 왔지. 정말 여기 있으니 다행인데...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오래전 꿈을 꿨어.”